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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금 사기로 날리고 갈곳없어 노숙… 보육원밖 세상은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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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권인연대
댓글 0건 조회 962회 작성일 22-10-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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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종료’… 막막한 18세 - 퇴소 뒤 ‘가혹한 현실’(1)

“어린 놈이 노숙” 따가운 시선
애써찾은 母는 “넌 버려진 놈”
지인에 속아 빚까지 떠안기도

폭력 등 ‘자격미달 부모’ 많아
의지할 데 없고 자립은‘먼 꿈’


스멀스멀 콧속을 파고드는 퀴퀴한 냄새, 점퍼를 뚫고 등줄기에 서리는 한기… 수도권 외곽의 한 기차역 대합실, 누군가가 불편한 자세로 잠을 뒤척이고 있다. ‘퉁’ ‘퉁’ 불이 켜지면서 그는 잠에서 깬다. 낯익은 부스스한 얼굴. 자세히 보니… ‘아니, 나잖아?’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에서 깨는 A 씨. 악몽은 그림자처럼 20년이 지난 지금도 A 씨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A 씨는 ‘그때’의 꿈을 아직도 종종 꾼다. 보육시설을 나와 노숙을 하던 때로 돌아가는 꿈이다. 마음의 상처가 워낙 커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사람들의 눈총도 상처였지만, 어른 노숙인들의 막말도 상처였다. 어른 노숙인들은 같은 노숙하는 처지면서도, “너는 부모도 없느냐”라며 온갖 시비를 걸어왔다. A 씨는 “그때를 뒤돌아보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앞으로도 삶이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청년 노숙인’이었던 A 씨의 또 다른 이름은 ‘보호종료 아동’이었다.

◇상처 주는 가족, 자격없는 부모

B 씨가 보육원을 나선 건 10여 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막상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가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B 씨는 애초 부모의 아동학대 때문에 보육원에 입소했다. B 씨의 아버지는 B 씨가 여섯 살이던 때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B 씨를 때렸다. 먼저 보육원을 나간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었다. ‘시설에서 나오게 되면 외롭더라도 괜히 가족 찾아가지 말라’고. 어떤 선배는 애써 찾은 어머니로부터 “왜 집에 왔느냐. 너는 어차피 버려진 놈”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B 씨 역시 ‘내 친구 영식이(가명)도 엄마가 돈 없냐고, 돈 좀 벌어오라고 보챈다던데… 가족은 없는 게 차라리 낫지’라고 생각했다. B 씨는 “보호종료 청년들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어른의 부재’”라며 “대다수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처럼 직접 위해를 가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보호종료 청년에게 가족은 오히려 상처를 주는 존재일 때가 많다. 범죄에 빠져 있다거나 양육 능력 자체가 전무한 ‘자격미달 부모’가 많은 것이다. 8년 전 보육원에서 퇴소한 C 씨는 퇴소 이후 아버지와 함께 살 예정이었으나,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면서 졸지에 다시 혼자가 됐다. 설상가상 재판을 담당할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자립정착금 역시 전부 탕진했다. C 씨에게 자립금 500만 원은 평생 만져보지 못한 큰돈이었지만, 재판과정에서 500만 원은 신기루처럼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버렸다. C 씨는 보호자의 부재에 대한 충격, 경제적인 어려움이 겹으로 겹치며 희망을 완전히 잃었다. C 씨는 아직도 직장생활 등 벌이 없이 방황하며 사는 중이다.

◇주변 사람의 배신, 사기

보호종료 아동이 힘들게 자립해도 주변인의 사기로 삶이 다시 구렁텅이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보육원에서 살다 퇴소 후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게 된 D 씨는 자립과 함께 바로 경제난에 직면했다. 어머니가 아팠던 탓에 홀로 벌이에 나서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머니 병원비로 자립지원금도 금세 써버렸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경제적 부담이 커지던 어느 날, 쉽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동네 형이 접근해왔다. 형은 휴대전화만 개통해서 주면 바로 현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D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금고지서를 받고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D 씨는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했다. 


보호종료 청년이 사회적 약자라면 사기꾼들에게 약점이 더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가지고 있던 E 씨는 보호시설에 다니던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운 좋게 일찍 공장에 취업하게 됐다. E 씨는 퇴소하자마자 남자친구도 생겼다. 남자친구는 E 씨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E 씨는 그런 남자친구를 믿고 의지했다. 그런데 어느 날 E 씨의 남자친구는 E 씨 명의로 스마트폰 5대를 개통하게 했다. E 씨는 의아했지만, 무슨 필요한 일이 있나 보다 싶어 개통했다. 남자친구는 며칠 뒤 “할 일이 있다”며 E 씨를 떠났다. 해당 스마트폰으로 대부업체 대출을 진행한 뒤였다. E 씨는 원금과 불어나는 이자로 인해 억대의 빚을 떠안게 됐다. 아동권리원 측 관계자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키워주고,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사기 대처법도 필히 가르쳐야 한다”며 “모든 자립 지원은 보호아동의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자립 자체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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