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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심층기획-‘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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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권익연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91회 작성일 23-09-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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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가족관계등록부에도 세상에도 ‘혼자’다
지난 6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정부 전수조사 결과, 2015년부터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212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안타깝게 유기되거나 세상을 떠난 아기들의 사연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세계일보는 영아유기·살해가 개인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라는 인식 아래 판결문을 분석하고, 영아의 생부모 사연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를 통해 드러난 영아유기·살해 범죄의 이면, 아동·여성 보호와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특별기획 시리즈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연재로 소개한다.

 

더 넓고, 더 조용한 집으로 왔지만 백새별(25)씨가 느끼는 삶의 질은 올라가지 못했다. 보육원 퇴소 후 정부가 지원하는 LH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도 벌써 2년차인데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90명의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모여 살던 보육원과 비교하면 혼자 사는 이 집은 너무나 넓고 고요했다. 괴한이 집으로 찾아올 것만 같고, 이곳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몸이 떨려왔다.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번지는 경험에 짓눌리던 3년 전의 그날을 새별씨는 떠올렸다.

 

“나 지금 가고 있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새별씨는 제천으로 향했다. 제천은 새별씨의 보육원이 있는 곳이자 새별씨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너무 반가웠고, 그 친구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새별씨는 친구들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제천에서 머문 한달 동안 새별씨가 쓴 돈은 1000만원에 달한다. 2년간 PC방, 중국집, 백화점 등에서 하루 13시간씩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이었다. 

 

단꿀 같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생활비가 동이 나자 다시 공허함이 찾아왔다.

 

“같이 죽지 않을래?”

 

때마침 연락해 온 친구의 말에 넘어간 건 그 공허함 때문인지 모른다. 돈도 없고 갈 데도 없던 차였다. ‘살기 싫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새별씨는 구미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모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다행히 모텔 주인에게 발견돼 전원 생존했지만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마음 속 그림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퇴원 후에도 자살 시도는 이어졌다. 새별씨는 총 4번의 자살 시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직장이 있잖아요. 저도 직장에 다니고 싶은데 저는 잘 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저 혼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자살 시도를 했어요.”

 

백새별씨 제천영아원 아동카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됐다

 

새별씨는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게 익숙하지 않다. 3년 전 아르바이트하던 수영장 사장이 성폭행했을 때도 홀로 견뎠다. 경찰서에 신고는 했지만 당시 상황이 괴로워 조사 받기를 거부했다. 새별씨가 머물던 쉼터로 경찰이 찾아왔을 때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아무일도 아니다”고 둘러대며 고통을 삼켰다. 

 

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새별씨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바보같이 아무한테도 말 못했네. (도움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있는 ‘기둥’이 저한테는 없어요.”

 

새별씨가 가리킨 기둥은 경제적·정서적 지지 기반을 의미한다. 이는 가족과 단절된 자립준비청년들이 겪는 공통된 감정이다.

 

자립준비청년 상담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임혜림(25)씨는 “부모와 단절된 자립준비청년은 힘들 때 기댈 ‘최후의 보루’가 없다”며 “너무 많은 친구들이 최후의 보루가 없어 삶을 포기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누구나 성인이 되고 자립할 때 어려움을 겪는데, 가족이란 울타리가 희미한 이들은 그 고통이 배가된다는 설명이다.

 

보육원 출신인 혜림씨 또한 고립감을 경험했다. 혜림씨의 경우 시작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평범한 주류에 속하고 싶고, 자립준비청년이 아닌 그냥 ‘청년’으로 살고 싶은 마음에 혜림씨는 보육원 퇴소 후 2년간 자립준비청년 지원 정책을 일부러 외면하고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악화됐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유지되지만, 대학을 졸업을 앞두고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돼 생계급여가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취업을 바로 하지 못하면 당장 사용할 생활비가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고립감은 도미노처럼 와요. 한 곳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나면, 다른 곳으로 고립감이 전이돼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도움을 구할 데가 없다’는 생각으로, 나아가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퍼져갔다. 그때마다 고립감이 심화됐고 그 고립감은 혜림씨 삶을 옥죄어 왔다. 혜림씨는 “감정이 바닥을 찍었을 때 ‘가족한테 말해볼까’ 생각이 드는 사람과, 가족이 없고 기댈 데가 한명도 없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서적 버팀목 제공해야”

 

특히 정서적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혜림씨는 “상담을 요청하는 자립준비청년 중 ‘버팀목이 없다’며 정신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면서 이들의 경제적 고립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정서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정부는 자립수당을 2019년 도입했고, 당시 30만원으로 책정한 금액을 2024년 50만원까지 인상한다. 이에 비해 정서적 고립감을 토로하는 많은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자립준비청소년 24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시설퇴소청년 생활실태조사 보고서(2022년)에서 “(자립준비청년은)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 진학 및 취업 등에 실패해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도움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회적 고립감이 클 수밖에 없고 은둔 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이들을 위해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증진 및 심리·정서 안정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혜림씨 역시 이런 청년들이 어려움을 느낄 때 “손을 뻗어 하소연할 수 있는 창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시스템 구축뿐 아니라 홍보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혜림씨는 “자립준비청년이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우선 필요하다”며 “근데 자립준비청년이 마음을 열고 그런 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에 있을 때부터 ‘자립한 뒤 어려울 때는 지원기관에 연락해’라고 말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선배 자립준비청년에게 직접 자립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자립준비청년 상담센터(☎1855-2455)와 온라인으로 자립지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립정보ON(https://jaripon.ncrc.or.kr)을 운영하고 있는데, 자립준비청년이 이런 창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에게 창구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기 영아의 경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만큼 정부가 세심하게 사례관리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중 부모를 모르는 아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더 괴로워한다”며 “이 아이들은 ‘내가 열심히 살면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식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생각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유기 영아)은 정부가 출생등록해주고, 정부가 키워준 정부의 자식들인 만큼, 정부가 부모의 마음으로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심하게 챙겨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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