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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세상으로 나온 ‘어른아이’의 독백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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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권익연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24-05-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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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의 그늘] ① 숨죽여 살아남는 방법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하는 생물종을 우리는 관심필요종이라고 부른다. 아직 멸종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기에 처하게 될 생물종인 것이다. 이를 인간으로 따졌을 때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할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과거 보호종료아동에서 긍정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명칭이 변경된 ‘자립준비청년’이다. 전보다 이들을 향한 관심이 커지면서 정부의 지원도 확대됐지만 아직도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린다. 여전한 사각지대 속 지역에서 살아가는 자립준비청년의 지금을 살피고 이들에게 정녕 필요한 건 무엇인지 세 차례에 걸쳐 살핀다.

 
[자립준비청년의 그늘] 글 싣는 순서

① 숨죽여 살아남는 방법
② 지원 많이 좋아졌지만
③ 오랜시간 방황 않도록

▲ 자립준비청년을 상징화해서 그린 그림. 기사 속 27세 A 씨와 상관없는 그림입니다. 그림=김세영 기자
▲ 자립준비청년을 상징화해서 그린 그림. 기사 속 27세 A 씨와 상관없는 그림입니다. 그림=김세영 기자

   27세 A 씨 1인칭 스토리텔링   
혼자가 된다는 사실이 숨통을 조여왔다
날 싫어하는 사람들 눈빛마저 그리웠다
기초 지식도 몰라서 방황한 동굴이었다

◆ 나는 왕따
학창 시절부터 나의 가정환경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었다. 내가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교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면서 나는 왕따가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육원 친구들도 나를 멀리했다. 수습할 겨를도 없이 나는 혼자가 됐다. 부모를 비롯한 세상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숨죽여 살아남는 방법을 깨우쳤다. 상처 가득한 시절이었지만 막상 퇴소를 앞두고 나니 두려움이 숨통을 조르기 시작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조차 곁에 없는, 혼자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심함이 서린 친구들의 눈빛마저도 그리웠다. 비가 와 축축하게 젖은 시설 운동장의 냄새,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였던 복도의 공기 같은 것들. 좋든싫든 나의 전부였고 내 주위를 항시 맴돌았다.

◆ 퇴소 이후
가스비나 전기료 납부 같은 기초적인 걸 몰라 헤매기 일쑤였다. 시설 생활 당시 같은 방을 썼던 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자립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햇빛이 부족해 웃자란 내게 유일하게 지주대가 돼 줬다. 지금은 사무직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시설을 퇴소할 당시 자립수당 지원 제도가 없어서 라면 한 개로 두 끼를 나눠 먹을 정도로 궁핍했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돈을 어떻게 모으는지,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몰라 쓰지 않아도 될 일에 너무 많은 소비를 했다. 지금은 기본적인 요리를 하며 식비부터 줄이고 있다. 평범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아직도 서툴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친해지는데 나만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과 나 사이에 서 있는 불투명한 벽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탓하는 일이 늘어난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기 힘든 이유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 어른아이
보호아동을 넘어 자립준비청년을 지나왔다. 이제는 이름 앞에 새겨진 대명사로 나를 설명할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그때의 나와 같은 아이들을 보면 여전히 씁쓸함이 입안 언저리에 맴돈다. 자립준비청년을 향한 지원이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울타리 없는 세상을 홀로 살아간다는 건 무기 없이 정글에 놓인 것과 같다. 개개인의 개성과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반화된 지원이 아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만지게 돼 경제 관념이 떨어지고 도시가스 연결도 할 줄 몰라 덜덜 떨었던 어른아이인 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등 세세한 지원이 생겼으면 한다. 나처럼 오랜 시간 방황하지 않도록, 같은 출발선에서 공평하게 달릴 수 있도록.

김세영 기자 ksy@ggilbo.com

※ 이 기사는 대전지역 자립준비청년 A(27·여)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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