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로 저와 같은 아동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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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곧 내 정체성의 근원입니다. 부모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가슴이 뚫린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박탈함과 동시에 국가가 버려진 아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빼앗긴 권리로 평생을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아동들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자립준비청년 안재모씨)
고아권익연대와 사단법인 디올포원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동작을)과 함께 29일 국회에서 ‘보호(익명)출산제 실행으로 인한 인권침해 방지 및 유기피해인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보호출산제는 지난해 영아 유기·살해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자 ‘출생통보제’ 도입과 함께 논의가 시작됐다. 병원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을 택하는 위기 임산부가 늘어날 수도 있다며 익명으로도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보호출산제는 여야 합의로 지난해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보호출산제 내용을 보면, 의료기관에서 보호출산으로 아동을 출산한 산모는 7일의 숙려기간 후 지자체에 아동을 인도할 수 있다. 아동을 인도받은 지자체장은 성과 본을 창설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고 이후 아동은 입양·가정위탁·시설보호 등 보호절차를 밟는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자립준비청년·입양인 등 당사자들은 보호출산제가 사실상 아동의 ‘유기’를 합법화하는 법안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아동을 보호하자는 취지지만 현실에선 많은 아동이 시설에 맡겨져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채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자립준비청년 안재모씨는 지방의 미혼모 시설에서 태어나 서울 은평구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입원을 할만큼 심한 기합과 폭행 등을 여러 차례 당했다고 했다. 보육원의 학대만큼 안씨를 괴롭혔던 건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안씨는 “여러 곳을 수소문해 생모의 사진을 찾을 수는 있었으나 그 이상의 진전은 어려웠다”며 “저는 보호출산제로 인해 저와 같은 아동들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천성 심장기형이었던 자립준비청년 홍진수씨는 부모의 친권 포기와 입양 동의로 제주와 서울의 보육원 등을 전전하며 자랐다. 홍씨 역시 시설들에서 가혹행위와 학대를 당했다. 성인이 된 후 친생자 관계 확인 소송을 제기한 홍씨는 “부모님을 만난다면 (무엇을 할지) 많은 상상을 해봤지만 부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왜 나를 버렸는지 듣고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가정에 입양이 되어도 친부모를 알지 못한다는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입양인 당사자인 민영창 국내입양인연대 대표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무시하고 아동에게 인생에서 치유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악법”이라며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 아동은 평생을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며 수도 없이 자신에게 잘못이 있어 부모가 나를 버렸는지 자책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후 3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해외입양인인 한분영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anish Korean Rights Group·DKRG) 공동대표는 “덴마크는 아이의 알 권리 차원에서 부모가 누군지 국가가 알려주고, 친부가 누군지 모를 때는 국가에서 유전자 검사까지 해준다. 또 아이를 임신하고 키우는데 스트레스가 없도록 지원을 해준다”며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보면 한국은 왜 이렇게 해외입양을 많이 보내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국도 앞으로 가족들이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시스템보다는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한테 신경을 조금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임산부가 보호출산제를 선택하지 않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임신 중 겪는 갈등 후 양육을 선택할지 입양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체계가 더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위해 긴급으로 잠시 맡길 수 있는 긴급위탁가정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가족·친인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원가족·친인척 아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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