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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찾기'는 되고 '부모찾기'는 안 된다는 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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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권익연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5-05-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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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한 가정에 한 아이를 입양하자는 취지로 지난 2006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상 모두를 바꿀 순 없지만 한 아이의 세상은 바꿔주자는 선한 취지에서 생겨난 제도가 바로 입양이다. 하지만 한 아이가 입양되는 과정에서 그 아이가 어떻게 입양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 있다. 입양이라는 선하고 아름다운 면에 집중한 나머지 원가정(아동이 태어난 본래의 가정) 보호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명제에는 소홀히한다.  고아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입양보다 원가정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로부터 분리된 아이들의 대다수는 입양보다 고아원이라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된다. 지금은 그 명칭이 보육원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곳 출신들은 자신들을 고아라고 표현한다. 그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고아원이라는 이름 대신 보육원으로 대체해 부르고 있지만 이는 명칭을 바꿔 본질을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고아원 출신들은 그 역사가 시작된 이후 약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외 입양된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130만 명 정도로 집계된다. 지금도 전국의 280개 고아원과 800개 그룹홈(소규모 고아원)에 약 3만 명의 아동 청소년이 수용되어 있다. 7세에 부모를 잃고 무려 16년간을 고아원에서 보낸 조윤환 씨는 고아권익연대라는 단체에서 대표를 맡고 있다. 고아원 출신자의 권리회복과 현재 수용되어 있는 고아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가로 뛰고 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의 부랑아 일시단속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었다. 특히, 88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을 성공리에 치룬다는 목표하에 눈에 거슬리는 모든 이들을 수용소 같은 곳으로 보내버렸다. 성인과 아동을 가리지 않았다. 조윤환씨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엄마에게 버려져 울고 있을 때, 경찰의 손에 이끌려 졸지에 서울시 산하 아동일시보호소로 보내졌다. 엄마를 찾아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어린 그의 말을 묵살했다. 보호소로 들어가던 날 그는 엎드려서 매를 맞고 있던 수용자들을 목격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다. 그 보호소에서는 매일 시체 같은 것이 실려 나갔다. 1985년의 일이었다. 졸지에 부모형제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황에서 보호자 없는 이들은 매일 폭력에 시달렸다. 그곳에서 2~3개월간 머물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찾아왔다. 좋은 곳으로 갈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는 부여에 있는 신림원이라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실제로는 아동일시보호소에서 고아원 원장에게 돈을 받고 아동을 거래하는 것이었다. 그곳은 기합과 폭력과 구타가 일상이었다. 관리자가 때리고 선배들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식사라고는 벌레가 나오는 밥과 희멀겋고 짜디짠 김치가 전부였다. 먹는 게 부실하니 늘 배가 고팠다. 그런데 그 신림원이라는 곳이 횡령사건에 연루되고 사회문제가 되면서 폐쇄되었다. 그는 경기도 양평의 신망원이라는 고아원으로 다시 보내졌다. 이전의 고아원보다 먹는 것은 조금 나아졌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이지만 처음 고아원은 당연히 제공해 줘야 할 10개 중 1개만 고아들에게 제공했다면 두 번째 고아원은 10개 중 5개를 고아들에게 제공했다. 어차피 중간에서 착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두 번째 고아원이었던 신망원은 국가로부터 우수기관 표창장까지 받은 곳이지만 그는 그곳을 퇴소할 때,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퇴소 당시 조윤환 씨에게 직접 지원되어야 할 자립정착금과 개인 후원금은 조윤환 씨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 원장이 모두 착복한 것이다. 그는 2001년까지 고아원 생활을 마치고 먼저 퇴소한 선배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가 고아원에 있을 당시 몇몇 원생들이 입양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예의 바르고 성실하며 공부까지 잘했던 그는 고아원의 홍보와 마케팅 후원금 모집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입양도 보내지 않았다.

조윤환씨가 처음 생활했던 부여의 신림원. 지금은 폐쇄된 채로 잡초가 무성하다.
원생들은 모두 영혼을 잃어버린 아이들이었다. 폭력은 일상이었고 성폭행은 문화였다.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고 어린 원생들이 나설 수도 없었으며 오히려 관리자들이 앞장서서 폭력과 성폭행을 일삼았다. 성폭행의 피해는 동성과 이성을 가리지 않았으며 여성관리자들도 성폭행에 가담했다. 이는 조윤환씨 개인뿐만 아니라 고아원 출신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 순간 생존 본능이 발동했다. 그때부터 그는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고아원 출신자 중 대학을 나온 몇 안 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고아 수용시설이 기독교 기관이나 천주교에서 운영됐기에 신앙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도 하나님의 사랑을 빙자한 고아산업이었다. 고아원의 운영주체는 사학재단과 종교재단 등 다양하다. 그러나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고아원 운영자들은 모두 기득권층이며, 시설 운영은 가족기업 형태로 이루어진다. 세습 또한 당연한 일이다. 아동복지시설이라는 미명 하에 수용된 원생들의 삶은 끔찍하기만 했다. 최고의 아동복지는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지만 고아원은 부모를 찾아줄 생각은 애당초 없었고 국가도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은 영역 밖의 일이었다. 고아 1인당 지원되는 월 500만 원(최근 기준)의 돈을 고아원은 포기할 수 없었고, 국가는 고아원 단체(아동복지협회)의 막강한 카르텔에 막혀 부모 찾기의 중요함을 등한시했다.

조윤환 씨는 천신만고 끝에 친부모를 만났다. 부친이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동안 실종신고 된 상태로 모친의 부모에 의해 사실상 강제이혼 해야만 했다. 모친은 그런 상황에서 두 남매를 유기했다. 부모를 만났을 때, 그들은 각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손위 누나는 어찌어찌해서 목포의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모친은 자신을 강남 터미널에 유기했다. 그는 2018년 고아권익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고아원 퇴소 당사자들을 위한 최초의 인권단체였다. 지난 2022년 대선 국면에서는 윤석열이 찾아왔다. 정치인의 쇼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첫 방문이었기에 그저 기쁘게 받아 들였다. 시설 퇴소자들을 위한 반찬나눔 행사에 윤석열은 직접 부침개를 부치는 시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힘당의 몇몇 정치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듯했지만 그들은 결국 보호출산제라는 악법을 만들어 통과시키고 말았다.

 
출생신고를 반드시 거쳐야만 자녀를 입양 보내거나 고아원으로 보낼 수 있었던 제도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며 아동유기를 합법화시켜버린 보호출산제는 생명존중과 자기결정권의 비겁한 타협으로 생겨난 산물이다. 권리는 주장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이 제도는 프랑스에서 X출산이라는 이름으로 맨 처음 도입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 X출산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생부모의 존재를 알 길 없는 사람들이 프랑스 정부를 향해 보호출산제 자체를 폐지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생모의 결정에 따라 친자관계의 단절이 인정되고 출생정보에 접근할 자녀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비밀출산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 제도에 자기결정권이라는 막강한 방어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법은 오로지 산모만을 위해 제정한 법이어서 아이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 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법이 고아들을 대거 양산한다는 점이다. 고아원의 카르텔은 보호출산제의 통과에도 깊게 개입된 것이다. 한국미혼모협회는 이 법에 대해 “보호출산제보다는 미혼 부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노력과 함께, 임신 출산 양육을 위한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보호출산제는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태어난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토록 반대하던 보호출산제가 통과되자 그는 지난해 8월 국회 앞에서 크레인을 타고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곳에서 그는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고아들의 인권회복에 관련한 법을 만들어 준다고 했지만, 인권회복은커녕 고아들을 양산하는 보호출산제를 통과시킨 것에 대한 분노의 외침이었다. 비정치적 당사자 인권단체 중 윤석열 탄핵을 외친 것은 그가 최초였다. 그가 고아권익연대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고아원 운영자들로 구성된 아동복지협회는 현재 그런 폭력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고아권익연대는 모든 고아원을 대상으로 한 아동폭력 전수조사를 실시하자고 주장하지만, 아동복지협회는 묵묵부답이다. 최근의 폭력은 원생들에게 정신질환 약(ADHD)을 처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반 가정의 아동에게는 쉽게 처방하지 않는 약이지만 고아들을 상대로는 매우 남용되는 약이다. 고아원과 주변 정신병원의 교묘한 카르텔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당 약을 먹게 되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바보가 된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사랑 대신 정신질환 약을 먹이는 꼴이다.

 
지난 6일 양문석 의원실 등이 주관한 유기 수용시설 피해아동 권리회복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지난 5월 6일에는 민주당 양문석 의원실 등의 도움으로 고아권익연대 등 각 고아원의 생존 피해자들이 시설 출신자들의 권리회복과 보호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절규와 통곡이 하늘을 찌르는, 아비규환의 삶을 그대로 증명하는 현장 그 자체였다. 고아원 출신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질 때마다 한쪽에서는 분노하고 다른 쪽에서는 훌쩍이며 어떤 이는 눈물을 닦아냈다. 어느 피해자는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금관악기의 금속으로 된 피스로 매일 머리를 얻어맞곤 했는데, 머리뼈의 일부가 열려 있는 자신의 x-ray 두개골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연말연시 불우한 이웃을 돕자며 자선냄비로 후원을 요청하는 구세군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도대체 불우이웃을 돕자는 이들의 행태라고 볼 수 없는 만행이었다.

고아원 퇴소자들은 국가를 향해 부모를 찾아달라고 호소하지만, 이미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친생부모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실제 부모를 찾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미아 찾기’는 인정하지만 ‘부모 찾기’는 인정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법 현실이다. 부모를 찾아주는 법도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지만 그들이 버려지지 않는 법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개나 고양이를 버릴 때에는 비판하지만 아동유기에 대해서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는 관대함이 대한민국의 고아들을 양산하고 있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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