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돼요” > 뉴스자료

고아연대소식

뉴스자료
고아연대소식 뉴스자료

뉴스자료

고아권익연대가 함께하겠습니다.

“고아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돼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고아권인연대
댓글 0건 조회 887회 작성일 23-07-12 11:41

본문


고아들의 아버지를 찾아주는 조윤환 대표 (사단법인 더올펀)
6살의 어린 조윤환은 외할머니댁에 다녀오는 길에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버려졌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를 모셔온다던 엄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나이 39세가 되던 2018년에 극적으로 부모님을 찾았다. 33년간 고아의 인생이 끝나던 날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고아의 삶은 이미 끝나 있었다. 외로운 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던 그날,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조 대표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한몸이라며 취재진을 반기며 지나온 삶을 나눴다.

“윤환아, 너희 친할머니 유언이 뭔지 아니? 윤환이 불교를 잘 믿게 해라.” 33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조 대표는 만약 자신이 고아가 되지 않고 가정에서 자랐다면 지금쯤 아마 불교에 심취해서 불교계에서 무슨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아원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다. “진짜 신이 있다면 만나주십시오. 신이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고아도 만나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이비 신이라면 돈 있는 사람을 만나주시겠지만, 진짜 신이라면 비천한 자도 만나주시겠죠.” 그는 그렇게 하나님이 고아인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만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 놀라운 고백이네요.

“제가 살던 충남 부여 고아원은 인적이 드문 시골이라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먼 길을 마다 않고 20리 되는 거리를 매주 걸어서 오시는 할머니 전도사님이 계셨어요. 고아원에 함께 있던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일요일이면 친구들하고 뛰놀 수 있는데 할머니 전도사님이 오시면 예배를 드리니까요. 할머니가 하는 설교도 재미없지, 성경만 읽고 가시지,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전도사님이 이곳에 복음을 전하러 오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최근에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그분이 집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면 고아원에서 그분의 장례식을 치를 일이 없었겠죠. 그런데 전도사님 장례식이 고아원에서 열렸기에 제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거죠.”

복음 전하던 할머니 전도사님 때문에 하나님 만나

– 아, 안타까운 사건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셨군요.

“신비한 체험을 했어요. 할머니가 주님 품 안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적인 세계가 있구나. 그때 알게 됐어요. ‘아, 이게 목적이었구나. 내게 하나님을 믿게 해주시려고.’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된 이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어요. 할머니 전도사님 대신 오게 된 남자 전도사님이 하루는 “성경을 매일 읽을 사람이 있냐?”고 물었어요. 하나님이 고아원 아이들 중에 성경 읽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볼 마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제 마음에 큰 부담이 생기면서 제가 읽겠다고 했어요. 매일 한 장씩 빼먹지 말고 읽으라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전도사님이 “하나님이 너에게 확실히 응답해주시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성경을 매일 읽었어요. 자다가 깜빡하고 성경 안 읽은 게 생각나면 새벽 2시에라도 일어나서 추운 복도에서 읽고 들어가서 다시 잤어요. 지금까지도 매일 성경을 읽어요. 지금은 2장씩 읽죠.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에 나오는 놀라운 이적들을 날마다 체험하게 해주셨어요.”


부여 고아원 아이들. 제공: 조윤환

– 그런 간증이 있군요. 어떤 일이었죠?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고아원에서는 선배들의 폭행이 심해요. 동생들이 말을 잘 안들으니 몽둥이로 다스리거든요. 선배가 때릴 때 맞아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맞아도 아프지 않게 해주셨어요. 또, 운동을 잘하게 해달라고도 기도했어요. 족구를 하는데 진짜 공이 총알처럼 날아가는 거예요. 농구도 그렇고. 고아원에서는 잘 먹지 못해서 제 체격이 왜소했거든요. 산에 돌아다니면서 산딸기, 머루, 감, 칡 그런 걸 많이 먹었는데, 어느 날 학교 체력장에서 제가 전교 2등을 했어요. 운동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잖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신실하게 응답해주셨어요.”

소년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경험

– 살아가는 순간순간 기도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신 거군요.

“하나님을 믿게 되니 도둑질, 싸움도 끊게 됐어요. 고아원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돼요. 그래서 저도 아이들을 많이 때렸어요. 훔치는 것도 잘하고.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니 죄는 더 이상 지을 수 없었어요. 하나님은 대신 공부를 잘하게 해주셨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수학경시대회가 있었는데 제가 뽑혀서 나가게 됐어요. 고아원 역사상 이런 일은 드물어요. ‘윤환이가 왜 갑자기 공부를 이렇게 잘하냐?’ 이야기들을 했지만, 저는 그때 기도하면 다 응답이 됐어요. 공부를 잘하게 되니까 후원자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게 되고, 저를 키워주겠다는 사람도 나타나더군요. 그러면서 공부의 힘을 알게 됐어요.”

– 공부의 힘이 그런 거군요.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중학교 3학년 학력고사 칠 때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읽기 1독이 끝났어요. 아무래도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부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성경 읽기를 그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어요. 그때부터 최대 위기가 찾아왔어요. 갑자기 영어가 안 보이고 멍해지기 시작했어요. 공부 시간을 확 늘리고 더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니까 죽겠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혜와 지식을 제한하시더군요. 처음으로 죽고 싶었어요. 피할 곳이 없으니까요.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성경책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성경 읽기를 한두 달 쉬었는데 그사이 성적이 떨어졌어요. 성경을 다시 읽고 성적이 조금 회복되긴 했지만 특수반에서 계속 하위권에 있었어요. 하나님께 성경 읽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고, 지식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안주시는 거예요. 공부를 조금만 잘하게 돼도 금세 교만해지는 저를 주님은 아셨던 것이죠. 만약 하나님께서 중학교 때 지혜와 지식을 제한하지 않으셔서 제가 승승장구했다면, 아마 저는 교만해서 작은 실패에도 죽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뿌리가 없는 무성한 나무였으니까요.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셨어요. 저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이 너무 좋았어요.”

– 하나님이 어떻게 훈련을 시키셨나요?

“만약에 하나님이 재정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부모가 있는 사람들은 부모에게 손을 벌릴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하나님이 재정을 주지 않으시면 갈 데가 하나님밖에 없어서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저는 진짜 빈털터리였고, 오직 하나님만이 저를 책임지셨어요. 저는 그리스도인의 아버지가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실감나요. 하나님 앞에서 고아가 되어야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돼요.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나 육신의 아버지가 얼마든지 아버지가 될 수 있거든요. 저는 엄마의 손을 놓쳤을 때가 삶의 가장 큰 위기였어요. 그때부터 평생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을 때, 제가 바라는 만큼 다 되진 않았지만 그때부터는 주님께서 함께하시니까 안전한 거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제공: 조윤환

예전에는 고아원에서 보호할 수 있는 나이는 18세였다. 그러다 현재는 만 24세로 연장됐다. 보호종료가 된 조 대표는 고아원을 나오자마자 자신이 초라해졌다고 말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로 피했다. 교회는 마치 인큐베이터 같았다. 그곳에서 조 대표는 마음의 치료를 받으며 사회를 알아갔다. 그에겐 교회가 전부였고 신학교, 신대원을 나와 교회 전도사가 됐다.

교회의 도움으로 마음의 치유와 신학공부

– 교회 사역은 어떠셨나요?

“3년 정도 사역하고 나니까 바닥이 드러났어요. 제가 전도사인데도 청년들이 잘못하면 혼내는 것이 저의 방식이었어요. 고아원에서는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들을 구타했어요. 그곳은 회의라는 게 없는 곳이에요. 명령과 순종밖에는 없죠. 전도사라면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데 저는 혼내기만 했어요.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예요. 더 이상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사역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때 이미 결혼한 상태였어요. 아내가 ‘뭐 먹고 살래?’ 물어보는데 할 수 있는 게 운전밖에 없었어요. 야간에 대리기사를 했었는데, 아내가 돈은 적게 벌어도 괜찮으니 차라리 택시 기사를 하길 원했어요. 그렇게 택시 기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사회와 정치, 외교, 경제 등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됐어요. 감사한 것은 제가 모범운전자였기 때문에 경찰서와 관계가 있었고, 경찰들 덕분에 부모님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 부모님을 찾는 과정도 궁금하네요.

“한마디로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어요. 부모님을 찾고 싶어 도움을 구할 곳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고아 관련 단체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먼저는 내 부모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고아권익연대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부모를 찾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알아보던 중에 모범운전자 회장님의 도움으로 경찰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문제는 저의 기록을 찾아야 부모님을 추적할 수 있는데 제 본명도, 부모님 이름도, 주소도, 주민등록번호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주님이 지혜를 주셨는데, 제가 병역기피자로 돼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신체검사도 안받았거든요. 그래서 병무청을 시작으로 행정안전부, 경찰서의 도움으로 드디어 부모님을 찾게 됐어요. 그런데 또 반전은 있었죠. 어머니는 저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저를 보고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이유로 두 달 넘게 경찰서에 오지 않으셨어요. 그때 야곱처럼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이 제 아버지니까 육신의 아버지도 만나게 해달라고 엄청 많이 기도했어요. 얼마 후 사무실로 저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사무장님이 전화를 받으셨는데 직감적으로 저희 아버지인줄 아셨대요. 저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봤거든요. 제가 단체 대표인 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안심이 되셨는지 그때 아버지를 만나게 됐어요. 어머니는 나중에 만났죠. 어머니는 제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하시더군요. 미안하시다면서. 어머니를 만나고 제가 왜 버려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도박에 손을 대면서 힘든 삶을 사셨다. 조 대표의 어머니는 힘든 삶 때문에 교회에 나가게 됐고 아버지의 핍박이 시작됐다. 도박으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어머니를 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조 대표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6개월간 입원을 하게 되자 외할머니는 조 대표 아버지가 실종됐다고 신고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조 대표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도록 했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딸의 미래만을 생각하고 딸에게 행동을 요구했다. 초신자였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1984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그가 버려졌다. 그의 한 살 위 누나도 비슷한 시기에 서울역에 버려졌다. 나중에 만난 어머니는 자녀들을 버린 후 40일 금식기도를 했노라고 전했다. 조 대표는 어머니를 용서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 이어 조 대표는 어머니의 중보기도의 힘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고백했다.

비영리단체였던 고아권익연대는 최근 사단법인 ‘더올펀(the orphan)’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더올펀은 130만 명의 고아들의 뿌리를 찾는 사역에 주력할 계획이다. 조 대표는 “더올펀 방주의 선장이자 항해사는 하늘에 계신 고아의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고 고백했다.


고아의 권익을 위해 법원 앞에서 외치고 있는 조윤환 대표. 제공: 조윤환

– 우리나라 고아들의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또 교회가 고아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2만 명 정도에요. 사회에 배출된 고아들은 100만 명 정도죠. 현재는 자연 발생 고아는 거의 없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자연적으로 고아가 되는 경우는 친척들이 다 키우거든요. 문제는 버려진 고아가 대부분이에요. 이 고아 영역은 사탄의 아지트라고 생각돼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의 상처에요. 상처의 집합소가 고아들이고요.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폭력, 거짓말, 성폭행 등에 노출돼요. 자연스럽게 삶은 강력범죄로 이어지죠. 고아들의 자립률은 1%에요. 고아들 중에 날이 추워지면 일부러 교도소에 가는 친구들이 있어요. 교도소는 아프면 약도 주고 밥도 주고, 오히려 안 먹으면 걱정을 해주니 너무 좋은 거죠. 저는 이런 고아들은 사실 ‘유기 피해인’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으려면, 먼저는 부모가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도록, 유기된 아이들의 부모를 반드시 찾아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고속터미널에 버려졌을 때, 아버지가 찾으러 오셨는데, 경찰서에 실종신고된 아이가 없어서 찾지 못하셨어요. 교회는 이런 사탄의 아지트가 무너지고 고아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어요. 이 고아들에게 복지 차원으로 아무리 좋은 것을 제공한다 해도 결코 행복할 수 없어요. 저처럼 하나님을 만나야만 해요. 교회가 낙태를 반대하듯이 아이들을 유기하는 일에 반대하며 기도하는 일을 해야 해요.”

– 마지막으로 기도 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이 땅에 인위적으로 버려진 고아들이 피해자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되기를 기대하고, 사탄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고아들이 사라지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 친부모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요.” 

<복음기도신문=크리스찬타임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