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디서, 보호아동 홈리스 되다(1)

스무살 청년은 상가 화장실에서 잠을 청했다

조해람, 강은

공적 보호 바깥 떠도는 삶

지난달 21일 장현우씨(26)가 한때 머물렀던 서울 은평구 고시원 방을 둘러보고 있다. 장씨는 시설 퇴소 후 자립을 위한 지원을 받지 못해 고시원과 노숙 등 비적정주거를 약 3년 전전했다. 한수빈 기자

지난달 21일 장현우씨(26)가 한때 머물렀던 서울 은평구 고시원 방을 둘러보고 있다. 장씨는 시설 퇴소 후 자립을 위한 지원을 받지 못해 고시원과 노숙 등 비적정주거를 약 3년 전전했다. 한수빈 기자

보육원을 나간 형들은 머리도 노랗게 물들이고 멋지게 살았다. 2014년, 열아홉 살 늦여름에 보육원을 나오면서 장현우씨(26)는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니까 한 달쯤 뒤 서울 은평구의 한 상가건물 1층 남자화장실 안에서 웅크리고 누워 잠을 청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가을로 접어들며 밤공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하던 그날, 화장실 좁은 칸에서 장씨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살지? 왜? 남들은 잘 사는데….’

어려서 보육원에 맡겨진 것도, 퇴소 후 집 없이 떠도는 삶도 장씨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보육원을 퇴소한 직후 찾은 아버지의 집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어린 장씨를 시설에 보냈던 아버지는 돌아온 장씨에게 매일 욕을 했고 밥을 삼키는 그의 목을 때렸다. 한 달도 안 돼 도망나와 친구의 좁은 고시원에 얹혀 살았다. 며칠 뒤 친구가 말도 없이 사라진 뒤에는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3년간의 노숙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종일 걸었다. 해가 뜨면 거리는 환했고 사람들은 꾀죄죄한 장씨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부끄러워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만 돌아다녔다. 하루 종일 걷다가 밤이 오면 다시 잘 곳을 찾았다. 어느 날은 상가 화장실이었고, 다른 날엔 공원 벤치였으며, 건물 계단참이거나 불 꺼진 교회 로비 소파였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고시원에 몰래 들어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날이 밝으면 다시 걸었다. 3~4일씩 굶는 건 예사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준 노란 외투는 계속 삭아갔다. 이가 썩어갔고 벨트가 닿는 배에는 쇠독이 올랐다. 등록된 주소가 없어 의료지원은 받지 못했다.

■왜 나지? 돌아갈 곳의 부재

거리로 내몰린 장씨를 국가는 찾지 않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대상아동의 위탁보호 종료 또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이후 자립에 필요한 주거·생활·교육·취업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아동복지법 제38조).” 거리로 나온 장씨는 모니터링될 수 없었고, 장씨도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워 도와달라는 요청을 속으로 삼켰다. 배가 너무 고파 창문이 열린 차에서 지갑을 훔쳤을 때 국가는 불쑥 나타났다. 유일한 옷이었던 노란 외투가 폐쇄회로(CC)TV에 선명하게 잡혔다. 주민센터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빌고 빌어 벌금 50만원을 내고 “세상이 나를 버린 기분”으로 서울역 노숙인 쉼터로 흘러갔다.

서울역에 내던져진 20대 청년은 미래 대신 끝을 상상하곤 했다.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길 바랐다. 대로를 지나는 차에 치이거나 서울역을 둘러싼 고층빌딩 옥상에서 떨어지면 “몇 초만 아프면 끝”이고 “고생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가는 것” 아닐까 싶었다. 씻지도 못하고 전화도 없으니 일도 못했다. 어쩌다가 돈이 생기면 사우나에서 겨우 몸을 씻거나 고기뷔페에서 위 용량의 한계까지 음식을 욱여넣었다. 하염없이 걷거나 울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왜 나지?’

주거지원을 받지 못해 노숙을 전전한 장현우씨(26)는 노숙 시절 한 상가건물 화장실에서 밤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보금자리를 마련해 자립을 준비 중인 장씨가 과거 자신이 지낸 화장실 칸을 지난달 21일 찾았다. 한수빈 기자

주거지원을 받지 못해 노숙을 전전한 장현우씨(26)는 노숙 시절 한 상가건물 화장실에서 밤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보금자리를 마련해 자립을 준비 중인 장씨가 과거 자신이 지낸 화장실 칸을 지난달 21일 찾았다. 한수빈 기자

장씨의 물음처럼, 돌아갈 가정이 없는 현실은 이들의 선택이 아니다. 지난해 발생한 보호대상아동 4120명 중 1767명은 학대 때문에, 279명은 부모가 사망해서, 172명은 버려져서 가정을 떠났다. 부모가 교정시설에 입소하거나(166명) 이혼해서(539명) 갈 곳을 잃은 이들도 있다. 언젠가는 시설을 떠나 자립해야 하는 이들에게 ‘쓰러져도 기댈 수 있는’ 가정의 부재는 뼈아프다.

특히 ‘주거 상실’은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을 거리의 삶으로 내몬다. 집을 잃으면 곧바로 떠돌이다. 고시원과 쉼터, 노숙 등 취약주거를 전전하는 늪에 빠진다. 9세 때 홀아버지를 여의고 시설에서 자란 김모씨(32)도 그랬다. 26세에 1년간 지낸 그룹홈을 나와 경기 광명시에 좁은 고시원을 마련했다. 여러 종류의 시설을 옮겨다니는 바람에 자립지원을 받진 못했지만, 창문 없는 월세 17만원짜리 고시원은 답답한 시설을 떠나 독립을 꿈꿀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조차 2015년에 떠나야 했다. 모아둔 돈은 아파트 보안 직장 동료의 사기와 따로 살던 친누나의 병원비로 모두 잃었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이틀을 지낸 뒤 서울 영등포역 인근 노숙인쉼터로 옮겼다. 6명이 누우면 가득 차는 방에서 김씨만 20대였다. “아저씨들이 안 좋게 봤어요. 나이도 젊은데 나가서 일해야지, 왜 여기 와 있냐고요.”

삶에 시달린 김씨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오전 9시에 일어나 씻고 오후 4시까지 멍하니 쇼핑백을 접었다. 한 장을 접으면 55원을 줬다. 다 접고 2시간 정도 전단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 2만~3만원이 생겼다. 저녁이면 PC방을 가거나 여의도공원을 걸었다.

■내 인생, 캐리어 가방 하나에

장씨나 김씨와 달리 시설 보호를 잘 마치고 정부의 자립지원을 받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도 불안정한 주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정찬주씨(23)가 전북 군산의 그룹홈에서 만 19세에 퇴소할 때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만기 보호종료아동에게 지급되는 자립준비금 500만원을 보증금 삼아 원룸을 구했다. 그룹홈 원장이 집 계약까지 도왔다. 자립수당 30만원으로 월세를 내며 초밥 뷔페집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매일 몰려와서 전기와 가스를 펑펑 쓰는 친구들 때문에 늘어난 공과금이 부담스러워 원룸을 정리할 때도 정씨는 자신이 떠돌이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2018년 충남 아산의 휴대폰 액정 제조 하청업체 공장 기숙사에 들어갔다. 방 2개에 거실과 주방까지 있으니 4명이 생활해도 넉넉했지만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던 정씨를 팀장은 유독 괴롭혔다. 3개월 만에 공장을 그만두고 시설에서 알던 형의 인천 원룸으로 올라가 3명이 살았다. 한 형은 호프집, 다른 형은 곱창집, 정씨는 쪽갈비집에서 일했다. 비좁은 원룸에선 잠만 잤다. 쪽갈비집이 문을 닫고 2019년 겨울 다시 군산으로 내려왔을 때 떠돌이 정씨의 세간살이는 이미 캐리어 하나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짧은 아르바이트만 했기에 돈도 많이 모으지 못했다.

군산으로 돌아오자마자 당한 약 1000만원의 ‘휴대폰 깡(휴대전화를 개통해 소액결제로 현금을 마련하는 수법)’ 사기는 그나마 남은 것도 털어갔다.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춥고 좁은 놀이터 원형 미끄럼틀에서 잠을 청하면 30분이 고작이었다. 몸이 떨리면 마음은 얼어붙었다. 한겨울 아파트 옥상 계단참에서 잘 때는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편이 필요한데, 사실 그게 가족인데 저는 늘 혼자였으니까요. 매번 당하다 보니 다 적으로 보였어요.”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사장이 빌려준 돈으로 원룸을 구해 전입신고를 했다. 국가는 그때 나타나 정씨에게 떠돌던 시절의 책임을 물었다. 주거지 불명으로 전입신고를 못하고 병무청 신체검사 통지서도 받지 못해 과태료만 60여만원을 냈다.

시설 퇴소 아동이 자립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이슈가 되면서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지원체계가 강화됐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자립정착금을 1000만원까지 확대했다. 자립수당 지원 기간도 보호종료 후 3년에서 5년까지로 늘었다. LH 주거지원도 생겼다. 그러나 늘어난 지원이 정씨 같은 이들에게 성공적으로 가닿는지, 지원받아 시작한 홀로서기가 적절히 관리되는지는 다른 문제다. 보건복지부의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2020)’를 보면 1~5년차 보호종료아동 3104명 중 20.6%가 보호종료 이후 숙박시설이나 친구·지인의 집, 구금시설, 노숙 등 ‘영구적인 주거지로서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시설 퇴소 후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모씨(32)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씨는 영등포역 인근 노숙인거주시설에서 지낸 경험이 있다. 한수빈 기자

시설 퇴소 후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모씨(32)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씨는 영등포역 인근 노숙인거주시설에서 지낸 경험이 있다. 한수빈 기자

주거가 흔들리면 일자리·인간관계·심리 같은 삶의 다른 영역도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연구를 수행한 이상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정책연구센터장은 보고서에서 “주거 취약 경험은 심리·정서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뿐 아니라 범죄 피해 등 2차적인 위기를 유발하거나 그 결과일 수도 있어 집중적인 지원과 관리가 요구된다”며 “최소한 보호종료 후 5년까지라도 주택 선정과 계약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언제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주거 안전망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귀인’을 만나면 끝날까

장씨와 김씨, 정씨는 지금 새 보금자리를 구했다. 장씨는 한 복지관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시원을 잡고 일을 시작해 지금은 원룸에서 산다. 시와 음악을 만드는 취미도 생기고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사회복지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홈리스 청소년 지원사업을 하는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와 연이 닿았다. 교회와 연결된 고시원을 거처로 삼고 카페에 일자리를 구해 제과제빵사 경력을 쌓고 있다. 정씨는 지인 소개로 시민단체 고아권익연대의 도움을 받아 고졸 검정고시를 보고 영상 편집을 공부 중이다.

복지관 선생님, 교회 장로, 고아권익연대를 알고 있던 지인. 거리를 떠돌던 세 사람이 우연히 ‘귀인’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한 것은 행운이다. 그 행운을 뒤집으면, 우연히 귀인을 만나야만 겨우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비극이 있다. 행운의 그런 뒷면을 세 사람은 절절하게 알고 있다. “고아권익연대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 아르바이트하며 전전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정씨)” “교회가 없었으면 계속 일도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똑같은 삶을 살았겠죠.(김씨)”

성공적으로 자립한 보호종료아동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다. 보호종료를 마치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보호종료아동 자립 프로그램을 돕는 이휘주씨(25)는 “재단과 교류가 있고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행운을 얻은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끼리도 한다”고 말했다. 어느 시설에 맡겨지느냐에 따라 미래가 갈리기도 한다. 정부의 자원이 있어도 이를 당사자들과 연결시켜줄 시설 실무자의 역량과 의지가 없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퇴소 전에 전담 선생님이 집을 구해주는 곳이 있고, 집 없이 나와서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나중에야 정보를 알게 되는 친구들도 있죠. ‘시바시(시설 바이 시설)’라는 말을 서로 많이 해요.” 아름다운재단에서 후배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돕는 캠페이너 박강빈씨(24)의 말이다.

시설 퇴소 후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모씨(32)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서울역을 둘러 보고 있다. 시설 퇴소 후 처음 잡은 고시원을 떠난 뒤 찾은 곳은 서울역 복도였다. 한수빈 기자

시설 퇴소 후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모씨(32)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서울역을 둘러 보고 있다. 시설 퇴소 후 처음 잡은 고시원을 떠난 뒤 찾은 곳은 서울역 복도였다. 한수빈 기자

행운을 얻지 못한 이들이 몇 명인지, 어디서 지내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후관리(자립수준평가) 대상인 보호종료 5년 이내 청소년은 2020년 기준으로 1만2399명이고, 이 중 2859명(23.1%)은 연락이 끊겼다. 2859명 중 몇 명이 불안정 주거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후관리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이들은 어디에서 지내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장씨는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겪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역에서 지낼 때도 그런 또래들을 종종 봤다. 잠시 나타났다가 서로 다른 날에 사라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장씨는 모른다.

■보호대상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보호자가 양육할 능력이 없거나 자격이 없는 아동은 ‘보호대상아동’으로 공적 보호를 받는다. 부모의 사망이나 학대, 이혼, 빈곤 등이 주된 이유다. 보호대상아동이 되면 상당수가 청소년쉼터나 아동양육시설(보육원), 공동생활가정(그룹홈)등 아동복지시설에 들어간다. 조부모나 친인척 혹은 다른 가정에 일시 위탁·입양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대상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종료아동’이 된다. 공적 보호가 끝나 자립해야 한다. 500~800만원의 자립지원금이 지급되고 매달 30만원의 자립수당도 일정기간 나온다. 다만 만 18세까지 보호시설에서 만기를 채운 사람만 받을 수 있다. 그 전에 퇴소한 아동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시설이 복지자원을 연결해줄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지원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강요된 자립’으로 떠밀려 나간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 아동 본인이 원한다면 만 24살까지 시설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자립수당 지급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었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명칭은 ‘자립준비청년’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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